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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ibet+Yunnan+ESC너머

티베트에서의 기억들3 - 옴마니반메훔

by 얄라셩 2022. 8. 4.
<오마이블로그에 남겼던 흔적들이 사라진 지금, 지난 계절의 나뭇잎 추억마냥 이곳에다가 펼쳐봅니다. 그리고 언제가는 다시 이어질 이야기를 하나씩 생각해 봅니다.>

IN Tibet 2006/09/09 얄라셩

옴마니반메훔


티베트하면 흔히 오체투지, 그리고 멀고 먼 순례의 길을 떠나는 티베탄의 숭고한 불심을 떠올리곤 한다.절로, 아니 사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까운 곳에 있다.
이번에는 티베탄의 생활 가까이에서 생활 속에 스며든 티베탄의 불심을 엿볼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그 중심에 죠캉사원(大照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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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정오의 죠캉사원 풍경과 향 연기


티베트의 2대 성지라 함은 오체투지를 하며 한 평생 꼭 해야만 하는 의무와도 같은 성산 카일라스 순례, 그리고 부처의 집이라 일컫는 라싸의 죠캉사원으로의 순례이다.
라싸의 고도에 채 적응도 되기 전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 날에도 꼭 들렀던 곳이 숙소 옆에 있는 죠캉사원이였다.
사원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곳의 티베탄을 보고 싶었다.
라싸의 시내에 있는 죠캉 사원을 티베탄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리고 일이 끝난 저녁녘에도 사원을 한 바뀌 돌고는 집으로 간다. 그네들 손에는 어김없이 마니차라는 것을 들고 있다. 마니차 두껑안에는 불법을 적은 종이가 감겨 있고, 우리네 염주 돌리듯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나즈막이 되내며 이 세상에서의 업을 변화시키고, 해탈하려고 한다.


▲ 일상의 아침 순례길

▲ 죠캉 앞 작은 광장에서의 불심

죠캉 사원 옆을 끼고 도는 소위 코라를 걸어본다.
티베탄은 마니차도 시계방향으로 돌고, 사원 옆 길을 걸을 때도 항상 시계방향이다.
한번은 친구가 버스매표소를 묻었는데 사원 입구 오른쪽 50미터면 되는데, 티베탄은 왼쪽 사원길로 가다보면 있을 거라 해 한 1Km를 걸어서 매표소를 찾았다.
그런데 그 매표소는 우리의 출발점에서 오른쪽으로 50미터가 채 되지 않은 곳 구석에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 그들은 충분히 이방인에게 친절했다. ^^

죠캉사원을 끼고 도는 골목길을 간다.

사원을 낀 골목은 관광객을 위한 골동품과 여러 장식구를 팔고 있고, 그 자판대 위에 아이는 한 낮의 피곤에 지쳐 곤히 잠들어 있다.

한낮에도 순례는 지속되고, 아이들은 복잡한 시장자판대 뒤에서 공기놀이를 즐긴다.
어디서나 사람의 세상은 공통점이 있다. 한낮의 태양 아래 그늘에서 아이들은 시간을 즐긴다.

길을 가다보면 곳곳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 먼길을 걸어오다 보니 옷은 해질대로 다 해져 누추하지만, 티베탄들은 그들을 만나면 작은 돈이지만 1원, 5원, 10원 등을 건네준다. 그들에게 돈은 금고에 쌓아두는 것이 아닌 시주할 때 베푸는 쌀과 같다.

돌아와 다시 사원 앞에 앉는다.
그리고 그들 속 한 꼬마를 만난다.

 

처음엔 그렇게도 쑥스러워 하더니만,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가 웃으면서 '너 참, 이쁘다... 내가 사진 찍어주면 안되겠니'라는 이상한 나라의 한국말에 어리둥절하더니만 곧 나를 보며 웃어준다.

 

불심이란게 자연성인가보다 싶다. 죠캉사원 벽에 퍼질러 앉아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하늘 높이 솟아있는 펄럭이는 룽다를 본다.
그네들을 담아보고자 스케치를 한다.
티베탄 한 분이 다가와 웃으며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이곳의 풍경을 그려보고 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옴마니반메훔을 이 종이에 써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러니, 50이 넘은 티베탄,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티베트어로 하는 말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유추한 그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글을 쓸 줄 모른다. 근방에 글을 쓸 줄 아는 친구가 있으니 그 친구가 티베트어로 옴마니반메훔을 써줄 거다'라고^^;

잠시후 그의 친구가 와 티베트어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만년필로 정성스럽게 옴마니반메훔을 써준다.
그 글이 이 글 처음에 펼친 그림이었다.
여기까지의 대화는 절대로 티베트어도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었다.
순전히 눈빛과 표정으로 소통한 대화이다.
옴마니반메훔,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것이 업에서의 해탈과 이어지는 그 무엇이라 생각된다.
글로서는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 그것이 옴마니반메훔 임을 알게된다.

죠캉사원 앞에서 기도하는 티베탄.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부처도 자연도 아이와 함께 있을 것 같다...

 
사원에서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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