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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 모음4

행복 행복 -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삼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젊음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심재휘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 창비 2022) 시인의 마지막 연의 이야기가 맘에 쏙 들어온다. 더웠고 힘든 늦여름.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인의 시와 같았다. 맹물 마시듯 의미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2022. 8. 21.
숲길 숲길 -곽재구 숲은 나와 함께 걸어갔다 비가 내리고 우산이 없는 내게 숲은 비옷이 되어주었다 아주 천천히 나의 전생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은 자신들의 먼 여행에 대해 순례자에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세상의 길 어딘가에서 만년필을 잃은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울지 말라며 아이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목적지를 찾지도 못한 내가 눈보라 속에 돌아올 때도 숲은 나와 함께 걸어왔다 우연히 '시요일'이라는 앱에서 이 시를 접하다... 잘 읽혀지는 시... 그런데 숲이 혹은 숲의 나무들이 울지 말라며 아이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라는 싯구에서 코끝이 찡해졌더랬다.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곽재구의 시를 처음 접한 때를 생각해냈다. 나의 20대 말,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짐을 싸서 처음으로.. 2022. 5. 13.
리산. 울창하고 아름다운 모퉁이를 돌면 말해다오 은밀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가령 저 먼 곳에서 하얗게 감자꽃 피우는 바람이 왔을 때 바람이 데려온 구름의 생애가 너무 무거워 빗방울 후드득후드득 이마에 떨어질 때 비밀처럼 간직하고픈 생이 있다고 처마 끝에 서면 겨울이 몰고 온 북국의 생애가 풍경처럼 흔들리고 푸르게 번지는 풍경 소리 찬 바람과 통증의 절기를 지나면 따뜻한 국물 펄펄 끓어오르는 저녁이 있어 저녁의 이마를 짚으며 가늠해보는 무정한 생의 비밀들 석탄 몇조각 당근 하나 노란 스카프 밀짚모자 아직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은밀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다 알려지지 않은 무엇이 여기 있다고 ---------------------------------------------------------- 2022년 3월 .. 2022. 3. 11.
소설-운명의 길 해양학을 전공한 노교수는 퇴임 후에 시를 쓰고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과 시베리아, 남미를 여행하였다. 그런데, 그 여행의 아주 깊은 곳에는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경이 담겨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연유를 알겠다. 그 여행길에서 꿈길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형제들을 그려보고 싶었서였을 것이다. 내가 소설에 대한 평을 하기에는 너무 얕고 가벼워서 다만 소설을 읽어가면서 느낀 감상만은 적어보고 싶다. 딴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지만 참 편하고 잔잔하게 옛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감동적이었다. 운명의 길... 글의 흐름과 스토리가 강물처럼 잘 흘러간다. 남한의 자유, 북한의 묶음 그 둘의 차이와 다름, 날숨과 들숨마냥 이야기가 전개된다. 충분히 남과 북의 자유와 묶음으로 전개되는 흐름을 헤아릴만 하.. 2020.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