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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 모음

숲길

by 얄라셩 2022. 5. 13.

숲길
-곽재구

숲은
나와 함께 걸어갔다


비가 내리고
우산이 없는 내게
숲은 비옷이 되어주었다


아주 천천히
나의 전생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은
자신들의 먼 여행에 대해
순례자에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세상의 길 어딘가에서
만년필을 잃은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울지 말라며 아이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목적지를 찾지도 못한 내가
눈보라 속에 돌아올 때도


숲은
나와 함께 걸어왔다



우연히 '시요일'이라는 앱에서 이 시를 접하다...
잘 읽혀지는 시... 그런데 숲이 혹은 숲의 나무들이
울지 말라며 아이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라는 싯구에서 코끝이 찡해졌더랬다.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곽재구의 시를 처음 접한 때를 생각해냈다.
나의 20대 말,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짐을 싸서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한 달 간 다녔더랬다.
뉴질랜드. 그 길에 곽재구의 시와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란 책을 가지고 갔던 기억이 났다.
여행길 간간히 시를 읽었다.
시를 읽으면서 음...시가 참 쉽게. 참 쉽게 읽히네...이런게 시인가?라며
세상 대단한 것은 뭔가 숨겨진 비밀과 평범함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렀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세월을 거쳐 지나오니
시를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고
위대함이란 걸 깨달았다.
세상을 헤쳐가다보니 깨달은 이치일 수도 있겠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복잡한 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평범하고 담백함에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숲길을 보며...
젊었을 적에는 생활공동체를
조금 더 세상에 살다보니 대안학교를
그리고 더 나이드니 작은 숲, 나무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무와 숲....
곽재구 시인의 시가 푸른 5월, 흐른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준다.

화엄사 구층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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